'분할 정복'으로 해결

 

2025.1.12

 

보험회계는 다른 회계보다 어렵다고 한다. 과거에도 보험회사의 재무제표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평가받았는데, 과연 이 말이 사실일까?

 

이 주장은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 본질을 살펴보면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보험회계가 어렵다는 인식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 복합적인 사회적 반응일 것이다.

 

1. 보험회계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유

 

(1) 회계에 대한 일반적인 선입견 

회계를 딱딱하고 어려운 주제로 인식하면 보험회계도 당연히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특히 일반 기업의 회계보다 어렵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2) 보험상품의 복잡성

보험회계는 단기적으로 단순한 상품도 다루지만, 일반적으로 중장기적으로 불확실한 미래 사건에 따라 수익과 비용이 변화하는 보험 보장 및 금융 서비스가 결합된 상품을 다루기 때문에 복잡하다. 

예를 들어, 상품을 사고파는 단순한 사업의 경우, 매출과 매입을 통해 손익을 계산하고 재무제표를 작성하는 과정은 상대적으로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보험은 20년, 30년, 또는 평생 보장하는 '무형'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예상과 달리 발생하는 사건이나 금리 변동 등 다양한 변수로 인해 수입과 비용이 변한다. 이에 따라 손익을 계산하고 미래 서비스에 필요한 부채를 측정하는 것은 당연히 복잡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보험회계는 다루는 대상 자체가 복잡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생긴다.

 

(3) 보험계약 기준서(IFRS17)의 포괄성

보험계약 기준서인 IFRS17은 특정 계정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보험 비즈니스 전체를 포괄하는 기준서이다. 보험계약 성립, 부채(자산) 인식, 자산 운용, 투자수익, 이자비용, 이익 및 손실 인식 등 다양한 요소를 하나의 기준서 안에서 설명한다. 

이 기준서는 보험산업이 ‘부채 주도산업(liability-driven industry)’이라는 특성을 반영한다. 보험계약이 체결되면 보험료가 납입되고, 이로 인해 부채가 인식되며 자산 운용과 투자 수익이 발생하고 계약자에 대한 이자비용을 인식한다. 또한 보험계약 조항, 사망률 및 생존율 등의 확률을 기반으로 각종 손익을 인식한다. 이처럼 복합적인 내용을 다루기 때문에 IFRS17은 상대적으로 어렵게 느껴진다.

 

이 외에도 실무적 관점에서 보험회계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여러 요인이 있으나 이 글에서는 앞서 제시한 세 가지 이유에 초점을 맞춘다.

 

2. 어려움에 대한 분석

 

첫 번째 이유는 모든 회계가 일반인에게 어렵게 느껴지는 특성에 기인하므로 보험회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기업 정보에 대하여 분석을 원하는 경우 회계를 비즈니스의 언어로 이해하고 이를 일반교양처럼 학습하면 해결될 문제이다.

 

따라서 보험회계의 주된 어려움은 두 번째 이유인 보험상품의 ‘장기성’, ‘무형성’, ‘보장’ 및 ‘금융’ 서비스의 복합적 특성과, 세 번째 이유인 보험산업의 특성을 반영한 포괄적인 회계 기준서 때문일 것이다.

 

두 번째 어려움은 보험상품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복잡한 상품이 등장하면 이를 처리할 수 있는 회계 기준이 그에 따라 적용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즉, 보험상품 자체의 복잡성에 따른 어려움은 회계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 본질 대상이 어렵기 때문에 파생된 어려움이다.  정상적인 비즈니스 관점에서 복잡한 거래 구조와 금융서비스가 등장하는 것은 사회 발전의 자연스러운 결과로, 이로 인한 정보 이해의 어려움은 상품 자체의 복잡성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이는 해당 상품의 구조를 세밀히 분석하면 해결될 수 있는 것이고 회계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세 번째 어려움은 IFRS17과 같은 보험회계기준서가 위에서 말했듯이 다양하고 복잡한 내용을 하나의 기준서에 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도 복잡할 수는 있지만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IFRS17이 독특한 해결책이나 별도의 회계원칙을 강요했다면 더 복잡했겠지만, 실제로 IFRS17 내의 측정 모형과 회계처리 논리는 일반 회계원칙이나 다른 기준서와 대부분 유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보험 관련 용어 사용, 실무적 특성, 제정 과정에서 인정된 일부 예외사항 정도이다. 설령 예외가 있다 하더라도, 제정 또는 개정 과정에서 그 이유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사회적 합의를 거치게 된다.

 

결국, 보험회계의 어려움은 보험상품 자체의 다양한 요소에 기인한 복잡성과 보험회계 기준서 내에 포함된 여러 회계원칙의 포괄성에 따른 어려움이다.  이로 인하여 회계나 계리 전문가들도 보험회계를 어려워하는 것이다.

 

3. 어려움의 해결 방법 - Divide and Conquer!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법은 새로운 방법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 방법에 대한 용어는 모를지 몰라도 우리는 학문뿐만 아니라 실제 비즈니스와 실생활에서도 이 방법을 자주 활용하고 있다.

 

이 방법은 "분할 정복(divide and conquer)" 또는 "문제 분해(problem decomposition)"라고 한다. 이는 복잡한 문제를 작고 관리 가능한 하위 문제로 나누고, 이를 해결함으로써 전체 문제를 풀어가는 접근법이다. 예를 들어, 대규모 제품 출시를 준비할 때 마케팅, 제품 개발, 공급망 관리 등의 분야로 나누어 각각의 세부 작업으로 분리한다. 마케팅은 광고 캠페인, 고객 분석, 시장 조사로 나누고, 각 하위 작업을 전담 팀이 해결한 후 이를 통합한다. 이렇게 문제를 작은 단위로 나누면 진행 속도가 빨라지고, 각 영역의 문제에 집중할 수 있다.

 

보험회계와 관련된 상기의 어려움도 그것이 다양한 요소로 구성된 보험상품의 복잡성이든 여러 요소가 내재된 회계처리이든 아무리 복잡한 문제라도 이를 구성하는 하위 문제로 분리해 하나씩 해결하면 문제를 해결하거나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IFRS17 기준서에 포함된 ‘적용 사례 문제’들도 이러한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복잡한 문제를 하나로 통합하여 제시하면 기준서를 보는 전문가조차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핵심 요소별로 사례를 따로 구분하여 만들어 이해하기 쉽게 제시하고 있다. 

 

4. 마치며

 

보험회계는 보험상품의 복잡성과 비즈니스 전 과정을 기준서에 담았기 때문에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나 "분할 정복" 접근법을 활용하면 문제를 단순화하고, 이를 재구성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과거에는 보험회계의 복잡성이 보험산업과 시장 간 정보 불균형을 초래한 주요 원인이었다. 하지만 보험산업이 제대로 발전하려면, 그리고 과거보다 더 높아진 정보이용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려면, 이제는 보험회계가 복잡하다는 이유만으로 정보이용자가 공시 정보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여기는 관점을 재고해야 한다.

 

아무리 복잡한 정보라도, 관련 지식을 갖춘 외부 정보이용자가 상식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는 단순히 보험회계의 복잡성 탓으로 돌릴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보험회사 등 정보 제공 주체가 정보 이용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한 설명과 정보를 제공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박규서 (한국외대/건국대 겸임교수, 경영학박사, 공인회계사, 보험계리사)

- IFRS17, K-ICS 하의 회계정보 신뢰 회복과 실질적 리스크 관리
2024.12.21

박규서 (외국어대/건국대 겸임교수, 경영학박사, 공인회계사, 보험계리사)

 

2023년 드디어 IFRS17과 K-ICS가 시행되었습니다. 관련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거의 20년이 지나 제정되고 시행되다 보니 준비 과정만 한 세대가 걸린 것 같습니다. 오랜 준비 기간 동안 감독당국과 보험산업은 새로운 제도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리 오래 준비한 IFRS17이나 K-ICS에 대해 시장은 상당한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새로운 제도 도입 초기에 나타나는 당연한 진통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감독당국과 보험산업은 오랜 기간 준비해 왔고, 보험의 본질 상 다른 산업에 비하여 리스크 관리가 더욱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이러한 시장의 우려는 보험산업이 미리 예상하고 관리했어야 할 중요한 리스크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보험산업이 리스크관리에 대한 어려움을 겪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이번 글에서는 대리인문제의 관점에서 이를 바라보고자 합니다. 같은 산도 오르는 길에 따라 다른 경치를 볼 수 있듯 보험회사의 리스크관리도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대리인문제

 

대리인이론(agency theory)이란 비즈니스에서 주인(principal)과 대리인(agent) 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설명하고 해결하기 위한 이론으로, 1976년 마이클 젠슨(Michael C. Jensen)과 윌리엄 멕클링(William Meckling)에 의해 발표되었습니다. [1]

 

대리인이론에 따르면 기업의 의사 결정을 주인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위임할 때 주인-대리인 관계가 성립하게 되며, 주인-대리인 관계가 적절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주인이 대리인에게 적절한 보상을 지급해야 하고, 대리인의 행동으로 인해 야기되는 경제적 성과를 정확히 평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인-대리인 관계에서 경영 의사결정은 불확실한 미래 상황을 대상으로 할 뿐만 아니라, 주인이 대리인을 완벽하게 감시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또한 정보의 비대칭 문제도 나타납니다. 따라서 대리인은 자기 나름대로의 이해관계를 우선시하면서 주인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역선택의 문제, 도덕적 해이 등 대리인문제가 발생하게 되고 대부분의 기업 경영에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주인과 대리인의 이해관계가 항상 일치하지 않아 대리인 문제(agency problem)가 발생하는 경우 주로 두 당사자가 추구하는 목표 또는 위험 회피 성향 등의 차이로 인해 결과적으로 기업의 리스크 관리에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예를 들어, 회사의 경영진(대리인)은 단기적인 수익에 따른 높은 보상을 위해 당기순이익 달성을 중요시하거나 상대적으로 고위험의 사업을 선택할 수 있으며, 이는 장기적 성장과 수익을 바라는 주주(주인)의 생각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리스크 관리가 정상적인 궤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문제는 주주-경영인 관계뿐만 아니라 주주 간에도 발생할 수가 있어 100% 주주인 회사와 다수의 주주 등이 있는 회사의 경우에도 소유구조에 따른 대리인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보험회사 대리인문제와 리스크관리

 

저는 개인적으로 90년대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원에 복학하여 졸업 논문을 준비하면서 당시 대리인이론을 논문의 주제로 생각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책 속의 대리인이론에 대하여 동의는 되나 당시 우리나라 기업을 보면 주인과 대리인에 대한 범위를 다르게 적용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우리나라 기업에 대리인문제를 투영하는 경우 해방 이후 대기업의 역사와 경영 행태를 볼 때 대리인이론의 주인이 상법상 주주에 한정하여 볼 것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기업의 성장 배경과 성격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산업화시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대기업의 성장에는 유능한 주주와 경영진의 헌신도 있으나 정부나 국민 또는 소비자의 직간접적인 또는 유무형의 실질적 기여를 생각하지 않으면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우리나라에서 주주나 경영진 (또는 주주이면서 경영인)의 행동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리인이론은 약간 달리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주인-대리인 문제에서 설사 100% 주주라고 하여도 해당 기업의 발전에 다른 자원, 예를 들어 상법상 주주 외에 실질적으로 국가 자원이나 소비자의 자원이 마치 자본금처럼 투입되었다면 그 주주도 행동에 있어서는 대리인처럼 행동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경우 설사 100% 주주라도 미래 사업에 대한 목표 설정과 경영 및 리스크관리에 대한 태도도 바뀔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의 우리나라 기업은 그렇게 생각하고 접근해야 기업 경영의 모습이 더 설득력 있게 설명되었습니다. 

 

이러한 대리인이론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보험회사도 대리인문제에 있어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보험회사는 보험계약자라는 또 다른 중요한 실질적 주인이 있고 그에 따른 추가적인 주인-대리인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보험회사는 대부분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되며, 주주의 자본금과 계약자에 의해 납부된 보험료로 형성되는 대규모 부채(IFRS17에서는 이것을 보험부채라고 하고 기존의 회계 관행에서는 책임준비금이나 계약자지분 등으로 표현함)로 자금 조달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산업과 달리 보험산업을 liability-driven industry라고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주주는 10을 투자하고 보험계약자의 보험계약과 관련된 부채가 100인 경우, 10을 투자한 100% 주주와 100이라는 일종의 타인 자금이 있는 재무구조에서 대리인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는 회사를 전적으로 자신의 자금 100%를 투자해서 직접 경영하는 주주와 내 돈은 10%만 투자하고 나머지는 다른 주주 또는 부채로 기업을 운영하는 주주의 경우 자금 집행 및 경영 방식과 리스크관리에 있어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대리인이론에서 말하는 현상과 실질적으로 유사하거나 동일합니다. 이렇듯 보험산업에서는 주주와 계약자 간, 주주와 경영진 간에 대리인문제가 동시에 존재하게 됩니다. 

 

그리고 보험상품은 다른 산업에 비하여 장기상품이기 때문에 대리인문제에 의해 파생된 경영 및 리스크관리 의사결정에 따른 결과와 영향이 다른 산업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오래 지속되고,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그것이 발현되는 기간도 길고 그 영향이 클 수 있습니다. 따라서 대리인문제에 대한 관리가 더욱 복잡해지고 해결 방안을 찾기도 더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보험은 장기 상품이면서 무형의 금융상품이고 서비스상품이라는 복잡한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인 관점에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고, 다른 산업에 비하여 더욱 정보의 비대칭성이 발생하고 있어 대리인문제가 더욱 심화될 수 있습니다.

 

결국 보험회사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복잡한 주인-대리인관계가 존재하고 정보의 비대칭성이 높으므로 리스크관리에 어려움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이러한 대리인문제가 있는 환경에서 경영 및 리스크관리의 잘못된 의사결정은 대리인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보험회사 내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와 같이 리스크관리가 잘못되어 대리인문제가 악화되는지 아니면 대리인문제 때문에 리스크관리가 잘못되는지에 대하여 그 인과관계를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한편, 우리나라 보험회사들은 현재까지 보험회사의 가치를 평가함에 있어 공식적으로 MCEV(market consistent embedded value)를 적용한 적이 없고 TEV(traditional embedded value)만을 적용하였기에 명시적으로 대리인비용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MCEV에서는 대리인비용이 고려되고 있습니다. 이는 MCEV를 떠나 기업의 가치도 ‘실질’을 고려하는 경우 모든 조건이 동일해도 대리인문제에서 차이가 있는 경우에는 기업가치에도 분명히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리스크관리 방향 재고찰

 

이상으로 대리인문제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우리나라 보험회사의 경우에도 대리인문제가 당연히 존재하고 오히려 더욱 그 문제가 복잡한 상황이라는 것, 그리고 보험회사의 특성상 대리인문제가 발생하면 그 영향이 장기에 걸쳐 더욱 복잡하게 전개될 것이라는 점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IFRS17이나 K-ICS라는 새로운 제도를 시행하는 이 시점에서 리스크관리는 어떠해야 할 지에 대하여 대리인문제를 염두에 두고 몇 가지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여기에서는 대리인이론에서의 주인을 시장이라는 단어로 함축하여 말씀드려보고자 합니다.

 

첫째, 시장의 신뢰(trust) 회복을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보험회사는 리스크관리에 있어 보험산업 및 보험회사에서 산출하는 제반 정보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여야 하고 이를 리스크관리에서 중요한 목표로 설정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기업 정보에 대한 공시도 단순히 Rule에 따른 공시가 아니라 시장이 이해할 수 있도록 그 양식과 내용에 있어 외부에서도 이해 가능하도록 충실하게 표현되고 적시에 제공되어야 합니다. 물론 이러한 부분을 회계나 계리 업무로 한정하시는 분들도 있겠으나, 저는 그러한 모든 것이 보험회사, 보험산업의 리스크를 다루는 포괄적인 ERM(enterprise risk management)의 한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대리인이론에서도 대리인문제는 정보의 비대칭 문제가 발생하고, 대리인이 자기 나름대로의 이해관계를 가지면서 주인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 있기에 발생할 수 있다고 합니다. 현재 시장이 가지는 보험회사에 대한 우려와 의구심도 그 근간에는 이러한 정보 비대칭에 의한 대리인문제에 기반하고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따라서 시장과의 소통을 통한 신뢰 회복이 절실합니다. 

 

둘째, ‘실질(substance)’에 따른 리스크관리입니다. IFRS17이나 K-ICS가 과거 제도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실질에 가까워졌다고 하여도 여전히 실질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리스크관리는 경영에 있어 IFRS17이나 K-ICS가 만일 실질과 차이가 나고 리스크관리에 부적합하다면 다른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회계에 있어서도 관리회계가 재무회계나 감독회계와 달리 별도의 회계로 존재하고 있는 이유라 생각합니다.

 

셋째, 내부 및 외부에 대한 개방적 마음가짐(open mind)입니다. 내부에서도 관련 정보가 부서 간에도 원활하게 공유되고 논의되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할 것이고, 외부적으로도 시장이든 주주이든 적절한 정보 제공과 소통이 필요할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지금도 회사 내부에서 당연히 공유되어야 할 정보마저도 여러 이유로 관련 부서에 적시에 공유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넷째, 의사결정 등 리스크관리 속도(speed)에 대한 부분입니다. 의사결정을 위해 가능하면 충분히 검토하고 논의하여야 하겠지만 그 의사결정 및 추진에 있어 속도감이 떨어지는 것 또한 리스크라고 생각됩니다. 

 

다섯째, 리스크관리에 있어 새로운 기술 및 방법론에 대한 실제 적용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 등과 같은 변화하는 기술을 적시에 비즈니스에 적용하여 성장할 수 있는 timing을 놓친다면 그 또한 리스크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이번 글에서 대리인문제라는 현재 보험회사가 측정하지 않는 리스크 요인을 통하여 보험회사의 리스크관리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이 생각이 또 다른 지식과 경험으로 부분적으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리스크관리에 있어 현재 측정하지 못하거나 측정하지 않는 리스크라고 하여 그것이 존재하지 않거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매일 듣는 금리리스크, 보험리스크만이 문제가 아니고 그것에 영향을 주는 근원적인 리스크가 있다면 그것이 제도권 내의 기준이 언급하지 않는 것이라도 감독당국이나 보험산업은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IFRS17이든 K-ICS이든 새로운 제도 자체가 그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설사 해결할 수 있다고 하여도 만일 십 년이나 이십 년 더 시간이 걸린다면 그동안에 실질에서 벗어난 경영 및 리스크관리의 결과는 사라지지 않고 결과적으로 누군가의 부담으로 귀결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적기 시정을 위한 시간(timing)과 속도(speed)에 대한 고려가 필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회사 내부의 전문가, 회계법인, 계리법인 등이 새 제도에 맞는 더 전문적인 지식, 방법, 매뉴얼, 시스템 등을 갖추는 것도 필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전문가로서의 독립성, 윤리 및 용기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시장과 회사가 그러한 윤리와 용기가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평가 및 보상체계를 확립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됩니다. 

 

(* 이 글은 2023.6월 한국보험계리사회 뉴스레터 제127호에 '대리인문제를 통한 리스크관리 재고찰'로 기고한 글입니다.)          


[1]

 Jensen, Michael C. and Meckling, William H. (1976). Theory of the firm: Managerial behavior, agency costs and ownership structure. Journal of Financial Economics, 3(4), 305–360.


 

 

- 잘못된 용어 사용은 잘못된 인식을 가져올 수 있다

 

2024.11.4

박규서 (외국어대/건국대 겸임교수, 경영학박사, 공인회계사, 보험계리사)

 

우리는 살아가면서 언어를 통하여 다양한 용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동일한 단어라도 분야와 목적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법률이나 회계기준과 같은 영역에서는 주요 용어의 정의를 그 분야와 목적에 맞게 명확히 설정하고 이를 해당 법률이나 회계기준에 한정하여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 또는 ‘대주주’와 같은 용어는 일상적으로 익숙하게 쓰이지만, 세법 등 특정 법률에서는 그 용어가 해당 법률 목적에 따라 특정 정의에 따라 제한적으로 사용된다.

 

우리나라도 IFRS17(국내에서는 K-IFRS 1117호라고 하지만 편의상 IFRS17로 언급하겠으며, 이하 다른 기준도 동일한 형식으로 표시함)을 오랜 준비 끝에 2023년부터 본격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2024년이 끝나가는 지금도 보험회계와 관련하여 업계와 언론에서 여전히 잘못 사용되는 용어가 있는데, 바로 ‘시가(market value)’이다. 예를 들어 기사 등에서 IFRS17을 적용하면 보험계약과 관련된 부채나 자산이 ‘시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하는 식의 표현이 종종 보인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용어 사용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국제회계기준(IFRS)에는 ‘시가’에 대한 용어가 명시적으로 사용되고 있지 않다. , 국제회계기준에 없는 용어이다. 국제회계기준 중 공정가치를 다루는 IFRS13 기준서에서는 ‘공정가치(fair value)’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공정가치를 측정일에 시장참여자 사이의 정상거래에서 자산을 매도할 때 받거나 부채를 이전할 때 지급하게 될 가격’으로 정의하고 있으나, 이것이 보험계약과 관련하여 기사 등에서 언급하고 있는 ‘시가’와는 다르다.

둘째, 보험회계인 IFRS17에서도 ‘시가’라는 용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보험계약은 IFRS17에서 이행가치(fulfillment value)로 측정된다. 재무회계 개념체계에 따르면 이행가치(fulfillment value)는 기업이 부채를 이행할 때 이전해야 하는 현금이나 기타 경제적 자원의 현재가치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행가치에는 거래상대방에게 직접 지급할 금액뿐만 아니라, 부채 이행을 위해 다른 당사자에게 지불할 것으로 예상되는 금액도 포함된다. 그리고 이행가치는 기업 특유의 가정을 반영하며, 미래 현금흐름을 바탕으로 측정된다.

 

비록 ‘공정가치’나 ‘이행가치’라는 복잡한 개념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요점은 IFRS는 보험계약에 대하여 ‘시가’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특히 보험계약에 대하여는 일반인들이 ‘시가’로 오해할 수 있는 ‘공정가치’도 아닌 ‘이행가치’로 측정해야 한다. 따라서, 오랜동안 보험산업뿐만 아니라 기사, 논문 등에서 IFRS17 도입으로 ‘시가’ 정보가 제공될 수 있다고 하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오류를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확한 용어의 사용은 개념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 필수적이다. 언어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저서 ‘논리철학논고(Tractatus Logico-Philosophicus)’에서 "언어의 한계는 곧 나의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라고 말했듯이 언어의 정확성이 이해의 깊이와 사고의 범위에 영향을 미친다

 

물론 일상생활에서 언어를 100% 정확하게 사용하는 것은 나 자신을 포함해 누구에게나 쉽지 않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법률이나 회계기준 등을 적용하고 이를 해석하여 의사결정을 내릴 때는 용어의 정확한 이해가 중요하다. 특히 그것이 어떤 제도의 근간과 연결될 때는 더욱 그러하다.

 

보험회사의 정보를 대중이나 투자자들이 ‘시가’로 요구한다면 또는 그 정보가 중요하다면, 보험회사나 감독당국 및 언론은 현재 보험회사가 제공하는 정보(예를 들어 ‘이행가치’)와 대중이나 투자자가 요구하는 ‘시가’의 차이에 대하여 과연 제공할지 그리고 그 차이에 대하여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IFRS17에 의한 정보가 ‘시가’라고 잘못 표현된다면, 이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그를 통한 발전의 가능성은 과거 오랜동안 그랬던 것처럼 차단될 것이다.

 

이에 대하여 “IFRS17에 의한 회계처리가 제대로 이루어져서 재무제표가 시장에 공시된다고 하면 그 수치가 ‘시가’라고 할 수 있나?”라고 질문한다면 과거에 IFRS17에 의하여 시가 정보가 제공될 수 있다고 한 이들은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인가? 이에 대하여 대답하지 못하거나 애매모호한 답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요컨대 IFRS17 하의 보험계약 관련 재무제표상의 금액은 회계기준에 근거한 특정 가치 측정기준에 따른 수치이지 이는 그 회사의 실질가치 또는 시장가치와는 다를 수 있다. 물론 상황에 따라 우연히 비슷하거나 같을 수도 있겠지만 그럴 확률은 극히 낮거나 없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시가’라는 하나의 단어를 예로 들어 보았지만 보험산업도 자신들의 귀중한 회계정보체계를 안정화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핵심 용어와 개념을 근본적으로 재점검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수십 년간 보험회사뿐만 아니라 많은 회사와 산업을 나름 경험하면서 미시적인 작은 디테일도 중요하지만, 회계적으로 회사나 산업의 가치를 좌우하는 것은 결국 일상 업무에서는 상식이라고 간과하기 쉬운 기본 개념에 대한 것들이었다. 내가 경험한 IMF 금융위기 이후 활성화된 M&A 사례에서도 회계적으로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거의 대부분 회계의 기본 개념 또는 시각에 따른 부분이었다.

 

‘시가’라는 용어는 언론기사 등에서 일상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사용되었을 수 있지만, 업계 등에서도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는 점은 문제다. 또한 이행가치, 공정가치라는 개념을 떠나 과연 현재 보험산업은 시장에 ‘시가’를 제공하는가? 이와 같은 불분명한 용어 사용은 현재 보험시장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한 요인이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가 있다.

 

다소 딱딱한 용어 정의에 대한 주제이기에, 이번 글의 마무리는 김춘수 시인의 ‘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 꽃 –

 

시인: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한국 보험회계가 과거에 현금주의였다고?

 

2024.10.22

박규서 (외국어대/건국대 겸임교수, 경영학박사, 공인회계사, 보험계리사)

 

최근 너무 많은 변화로 인해 재미있는 일이 많아 뒤를 돌아볼 여유 없이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가끔 지인들이 보내 준 기사나 논문을 읽거나 대화를 하다 보면, 2024년에도 여전히 곳곳에서 보험회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오해가 현재 보험회계의 정착을 방해하는 오랜 관행과 문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하기에 잠시 뒤를 돌아보고자 한다. (이 글의 목적은 과거의 잘못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현상이나 과거의 역사를 명확히 구분해야 과거에서 배울 수 있고 미래의 오류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기사뿐만 아니라 심지어 감사를 하는 회계법인의 인식이나 국내 유수의 회계 논문에서도 IFRS17 이전에, 마치 IFRS4에서는 보험산업에서 예를 들어 보험수익에 대하여 현금주의가 인정된 것처럼 주장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이는 명백히 잘못된 인식이다.

 

보험산업에 있어서 IFRS4가 있기 이전에도 우리나라 외부공시용 재무제표를 작성하는 일반회계원칙이나 보험에 대한 회계처리에 있어 현금주의는 인정되지 않았다. 당연히 발생주의였다. 현금주의에 따라 처리한 것은 대부분의 보험회사의 실무상 처리였고, 감독회계에서 그러한 부분을 용인한 것이다.

 

현금주의와 발생주의에 대해 복잡한 설명은 피하고 간략하게 사례를 들어보자. 보험회사가 보험료 1,000원을 12 31일에 받아야 했는데 받지 못했다면, 현금주의에서는 재무제표에 반영하지 않는다. 그러나 발생주의에서는 해당 보험료를 현금으로 받지 않았더라도 해당 금액을 재무제표에 인식하게 된다.

 

학계 논문이나 기사 등에서도 IFRS4의 경우 관행에 따라 현금주의가 인정된 것처럼 논의된 부분들이 여전히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학계나 회계법인들이 이 이슈를 생각하고 주장한다면 자본시장이나 산업에서는 잘못된 해석을 할 수 있다.

 

보험회계와 관련된 현금주의와 발생주의에 대한 이슈는, 외부공시용 재무제표를 만드는 재무회계기준에서 본다면 기존의 현금주의에 의한 회계처리는 인정된 관행이 아니라 회계 오류이다. 감독회계나 감독규정은 현금주의로 하든 발생주의로 하든 제한된 감독당국이 감독 목적으로 사용할 것이기에 문제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외부공시용 재무제표상 발생주의가 아닌 현금주의로 작성된 것은 회계기준 위반인 오류로, 그 금액이 중요하였다면 회계감사 시 지적되어 의견을 한정하든지 이를 수정하도록 했어야 한다.

 

이 글의 전반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과거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들추자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현상을 보다 정확히 진단하여 과거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생각하기 위함이다. 예를 들어, 잘못된 것이 인정된 관행으로 비추어진다면 자본시장의 일반 투자자나 보험산업, 회계법인, 대학교 등에서 새로이 진출하는 젊은이들은 마치 과거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으로 착각하여 과거의 오류를 명확히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거창한 말을 쓰진 않겠지만, 보험회계에서도 과거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결여되면 또다시 그러한 과오를 범할 수 있기에 이 글을 쓴다.

 

2024년 보험회계의 혼란도 사실 이러한 보험산업의 인식 오류가 일정 부분 복합적으로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GAAP과 SAP, 잘못된 일원화의 함정


2024.10.10

박규서

(외국어대/건국대 겸임교수, 경영학박사, 공인회계사, 보험계리사)


2024년, 국내 보험산업은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 IFRS17을 도입한 지 1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외부 공시 재무제표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는 단순한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보험산업 전반의 구조적인 원인에 기인한 것이다.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외부 공시용 재무제표를 작성하는 기준인 IFRS17로 대별되는 일반적으로 인정된 회계원칙(Generally Accepted Accounting Principles, 이하 “GAAP”)과 감독당국의 보험산업 감독을 위한 감독회계(Statutory Accounting Principles, 이하 “SAP”)에 대한 수십 년간 이어온 잘못된 인식이다.

보험회사들은 IFRS 도입 이전에도 재무제표가 국제회계기준에 따라 작성되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SAP에 의해 회계처리가 이루어졌고, 회계법인도 이 커다란 문제점을 제대로 지적하지 않았다. 보험산업과 회계법인에서는 이를 "실질적 일원화"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잘못된 인식이었고, 이로 인해 GAAP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았다.

동일한 경제적 실질이라 할지라도, 이를 인식하는 체계가 다르면 그 결과 또한 다르게 나타난다. 회계에서도 목적이 다르면 필연적으로 회계처리에는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 상식이다. 목적이 다른 재무회계와 감독회계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보험산업은 오랫동안 SAP을 기준으로 외부 공시 재무제표를 작성해 왔고, IFRS17 도입 전까지 GAAP을 사실상 무시해 왔다. 이러한 잘못된 관행이 수십 년간 우리나라 보험산업의 회계정보, 특히 외부 공시용 재무제표의 신뢰성을 저하시키고 있다. 이러한 관행이 IFRS17 도입으로 늦게나마 바뀌길 시장과 감독당국도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IFRS17을 도입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시장과 많은 매스컴은 여전히 보험산업의 외부 공시 재무제표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1년 동안의 외부 공시 회계정보를 분석하더라도, 이를 통해 의미 있는 결론을 도출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는 외부 정보이용자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막대한 내부 자원을 들여 산출하고, 매년 수억에서 수십억 원을 들여 감사 비용을 지출하며 시장에 발표되는 외부 공시 재무제표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최근 일부에서는 시장의 불신 속에서 회계 이원화를 주장하는 의견도 있지만, 이는 어불성설이다. 우리나라 보험회계는 이미 1990년대 말 IMF 금융위기 이후부터 GAAP과 SAP가 이원화된 상태였으며, 외부 공시 재무제표는 GAAP에 기초해 작성되어야 했다. 따라서 SAP이 실질과 다르게 적용된 부분이 있었다면, 회계처리는 GAAP에 따라 이루어졌어야 했다. 이는 IFRS17 적용 전이나 후나 동일한 원칙이다. 설사 IFRS가 없었다고 해도, ‘실질’을 반영하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졌어야 한다.

보험산업과 회계법인, 학계는 SAP을 보완해 IFRS17을 적용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실무적인 어려움을 줄여줄 것처럼 보였을지라도, 또 다른 많은 문제를 야기하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예를 들어, 보험회사가 아닌 일반 기업도 목적이나 회계기준이 달라지면 필연적으로 차이가 발생하며, 최소한의 조정을 거쳐 각 기준에 따른 재무제표를 따로 작성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재무회계와 세무회계의 차이이고, 국가별 회계기준 차이에 따른 별도의 재무제표 작성도 보편적인 사례다. 그러나, 더 복잡하고 장기 상품을 다루는 보험회계에서 SAP과 GAAP을 일원화하여 동일하게 처리하는 것은 사실상 회계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

요컨대, 보험산업도 예외 없이 외부 공시 재무제표 작성에서 '실질'을 충실히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IFRS17을 적용해야 한다. 그러나 보험산업은 IFRS를 적용하는 과정에서 ‘실질’에 대한 최우선 목표를 잃어버린 것 같다. 그리고 외부 공시 재무제표에 대해 회계법인과 계리법인은 IFRS17을 포함한 IFRS에 따라 적정하다는 감사 및 검증 의견을 표명했지만, 시장이나 많은 매스컴은 여전히 신뢰할 수 없다는 분위기이다. 이는 누가 봐도 이상한 상황이다. 감독당국도 이러한 이상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이 많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야기된 주원인 중 하나는 SAP과 GAAP의 일원화에 대한 오래된 잘못된 관행과 인식이다.

늦었지만 IFRS17 도입 후 1년이 지난 지금이라도 보험산업은 잘못된 관행과 인식을 철저히 반성하고, 현재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 내부적으로 공유하며, 이를 바탕으로 시장에 사과하고 지금이라도 올바른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진정한 용기라 생각된다. 감독당국도 이러한 용기를 가진 기업이 있다면 이를 지원하여 시장을 발전시키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 본다. 

잘못된 회계 수치는 결코 회사를 장기적으로 올바르게 이끌 수 없다. 보험산업도 금리나 제도 등 환경 변화에 따른 회계 성과나 지급여력상의 불리함이 발생할 때마다 임시방편식 처방을 통하여 벗어나려는 생각을 이제는 지양해야 한다. 

IMF 이후 그리고 금융위기를 거치며 우리는 수많은 실패 사례를 시장에서 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보험산업의 변화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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